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아스톤 빌라 FC (문단 편집) === 두번째 부흥기 === [youtube(gcW3s5URKCg)] 그렇게 어려움을 겪던 팀은 1974년에 론 손더스 감독이 부임하고 1975년에 리그 컵 우승과 함께 1부 리그로 승격하면서 전환기를 마련했다. 이후 1975년에 회장 자리를 내려놓은 덕 앨리스를 대신해 새 회장인 윌리엄 덕데일 경이 오면서 팀은 활기를 되찾아 1977년에 또 다시 리그 컵 우승을 한 뒤 더 전진해서 1980-81 시즌에는 14명의 스쿼드로 71년만에 리그 우승 컵을 차지했다. 왜 하필 14명이냐 하면, 당시 손더스호는 구단의 자금 사정 때문인지 더 나은 성적을 내지는 못했다. 그래서인지 여느 구단보다 더 적은 규모인 14명의 1군 스쿼드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그 스쿼드들의 이름을 얘기하자면, 지미 리머, 케니 스웨인, 켄 맥노트, 데니스 모티머, 데스 브렘너, 고든 코완스, 토니 몰리, 게리 쇼, 앨런 에반스, 피터 위드, 게리 윌리엄스, 콜린 깁슨, 데이비드 제디스, 어몬 디시였다. 그런데 손더스호는 1980-81 시즌을 앞두고 더 큰 야심에 타올라 있었다. 14명으로 팀을 이끈다는 건 무모하지만 이전에 두 번 리그 컵을 들어올릴 때와 같은 자신감을 무기로 삼고자 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선수들의 투지를 강조하여 강해진 이들은 초반부터 점차 승점을 쌓기 시작하여 특히 1980년 9월 13일에 [[에버튼 FC]]에게 패한 뒤 곧바로 12경기 무패를 달성하여 팀은 상위권으로 올라갔다. 이후 잔인했던 12월을 거쳐 박싱데이로 돌입하면서 팀은 또 10경기 연속 무패로 선두권에 올라가 [[입스위치 타운]], [[아스날 FC]]와 1위 경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전은 14명밖에 없었고, 교체는 3명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를 악물고 뛸 수밖에 없었다. 당시 선두이던 입스위치는 시즌 막판에 연패의 늪으로 빠져들자 이 틈을 탄 빌라는 1981년 4월 25일에 강등권 팀인 [[미들즈브러 FC]]를 격파했고, 5월 2일에는 입스위치까지 미들즈브러에게 지자 우승이 확정, 이로써 71년만에 우승 컵을 들게 되었다. 당시 언론들은 14명이라는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팀이 우승한 것에 대해 '아이언 맨'이라고 칭송하게 되었다. 1981년의 우승으로 유러피언 컵 티켓을 얻은 또 다른 영역인 유럽 무대에 눈을 돌리고 9명을 추가 영입해 스쿼드가 23명이 된 팀은 1라운드부터 아이슬란드 리그 우승팀인 발루르를 이기고 이후 동독의 [[디나모 베를린]]을 꺾어 8강에 진출했으나 그 사이 론 손더스가 구단과의 갈등으로 인해 [[버밍엄 시티]]로 옮겼고, 후임으로 수석 코치인 토니 바튼이 취임하여 팀을 잘 수습해 [[디나모 키예프]]와 1차전에서 0-0, 2차전에서 켄 맥노트의 헤딩골로 2-0 승리를 거두고 준결승에서 [[RSC 안데를레흐트]]와의 혈투 끝에 1차전에서 1-0, 2차전에서 0-0으로 승리하여 마침내 결승전에 진출했는데, 상대는 유럽 최강팀인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결승 장소는 [[페예노르트]]의 홈구장 [[더 카위프]]. 당시 독일 울트라스와 잉글랜드 훌리건의 난동에 대비하기 위해 경찰 병력이 투입된 상태로 개최된 이 결승전에서 초반에 악재가 터졌는데, 바로 골키퍼 지미 리머가 어깨 부상을 당한 것이다. 그후 6분 만에 백업 골키퍼인 나이젤 스핑크로 교체되어 힘을 되찾은 팀은 게리 윌리엄스의 파울에도 불구하고 전반을 무실점으로 막았고, 후반전에서는 바튼 감독이 세운 역습 전술에 따라 [[칼 하인츠 루메니게]], [[디터 회네스]], [[파울 브라이트너]] 3인방의 압박 전술을 이겨내고 나이젤 스핑크의 선방에 이어 게리 윌리엄스가 베르나드 뒤르베르거를 벗겨내고 이어 왼쪽에서 패스를 주고 달려들어가던 토니 몰리에게 패스를 주어 몰리가 바이에른 뮌헨의 골키퍼 한스 바이너를 앞에 두고 왼쪽으로 드리블하여 피터 위드에게 연결, 위드가 그대로 골을 꽂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바이에른 뮌헨의 디터가 상대가 방심한 틈을 타서 득점으로 이끌어냈지만 심판의 오프사이드가 선언되어 바이에른 팬들은 크게 실망했고, 바이에른은 오히려 공격에 나섰지만 빌라가 이를 막아내어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팀은 창단 첫 번째 [[빅 이어]]를 높이 쳐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팀 최고의 전성기이다. 1982년에 덕 앨리스 구단주가 7년만에 다시 온 뒤에도 1988-89 시즌에 2부 리그에서 뛴 것을 제외하고 대체로 중위권을 마크해 왔고, [[드와이트 요크]]나 [[폴 머슨]], [[페테르 슈마이켈]], [[가레스 사우스게이트]], 디온 더블린 등 걸출한 스타나 노장들도 팀을 거쳤으며 [[그레이엄 테일러]]와 [[론 엣킨슨]] 등 명장들도 거쳐갔다. 그러나 'Deadly Doug'이라는 별명이 붙은 엘리스 회장은 구단에게는 긴축 재정을, 감독에게는 성적에 대해 압박을 가했으며, 1990~2000년대 들어서는 전력 보강에도 소극적이었다. 이로 인해 그가 재임하던 시절에 4년 이상을 버틴 감독이 한 명도 없었는데, 특히 1991~1994년까지 재임했던 [[론 엣킨슨]]은 프리미어 리그 원년인 1992-93 시즌에 맨유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시즌 막바지까지 우승 경쟁을 했으나 마지막 리그 3경기동안 연달아 패배하면서 허무하게 리타이어했다.][* 당시 주 멤버는 EPL 올해의 선수상에 빛나는 [[폴 맥그래스]]와 리버풀에서 활약했던 [[레이 휴튼]], [[스티브 스턴튼]], 그리고 팀의 주포 [[딘 손더스]]가 있었다.] 1994년에는 코카콜라 컵([[풋볼 리그 컵]])에서 우승했지만 1994-95 시즌 도중에 성적 부진으로 쫓겨났다. 후임으로 [[레스터 시티 FC]]를 맡고 있던 브라이언 리틀이 감독이 되었는데 해당 시즌 18위를 기록, 강등당한 19위 팰리스에 승점 3점 앞서 가까스로 잔류했다.[* 22개팀에서 20개팀으로 줄어들어 4팀이 강등된 시즌이다.] 리틀 감독은 게리 찰스, [[드와이트 요크]], 앨런 라이트, 이안 테일러, 마크 드레이퍼로 팀을 리빌딩하며 첫 풀시즌이었던 1995/96 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 4위에 리그컵에서 [[리즈 유나이티드]]를 꺾고 우승했고, FA컵 준결승에 올랐다. 클럽의 전설적인 골키퍼인 나이젤 스핑크는 그 시즌을 끝으로 빌라에서 떠났다. 1996/97 시즌에도 5위를 기록했지만 1997/98 시즌 개막 4연패로 시작했고 유럽대항전 병행[* 보르도, 빌바오, 슈테아우아를 꺾고 UEFA컵 8강에 진출했는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탈락했다.]과 맞물려 1998년 2월 15위에 머물며 강등 위기를 겪자 리틀은 경질되었고, 존 그레고리가 감독이 되었다. 그레고리가 감독이 되자마자 빌라는 11경기 9승을 거두며 15위에서 7위로 뛰어올랐고 페어플레이 랭킹으로 UEFA컵에 진출했다. [[드와이트 요크]]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음에도 새로 영입한 [[폴 머슨]]과 [[디온 더블린]]의 활약으로 후반기의 상승세는 1998/99시즌까지 이어져 빌라는 개막 후 12경기 무패를 달렸다. 그리고 전반기 크리스마스 시점에는 프리미어리그 1위에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 후반기 급격한 DTD를 겪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날 FC]], [[첼시 FC]], [[리즈 유나이티드]]에 순위를 내줬고 결국에는 같은 유니폼 색상의 웨스트햄에도 밀려 6위로 UEFA컵은 커녕 인터토토컵조차 나가지도 못했다.[* 11위였던 토트넘이 리그컵을 우승했고, 13위였던 뉴캐슬이 FA컵 준우승(우승 맨유)해서 6위했음에도 UEFA컵에 나갈 수 없었다.] 1999/00 시즌에는 리그에서 6위를 했고, FA컵에서 43년 만에 결승에 올랐지만 [[로베르토 디 마테오]]가 결승골을 넣은 [[첼시 FC]]에 0:1로 져 준우승했다.[* 구웸블리 경기장에서의 마지막 FA컵 결승전이다.][* 다만 당시 EPL의 리그 순위가 낮았고 첼시가 5위였기 때문에 UEFA컵 출전권은 얻지 못했다. 인터토토컵에 갔는데 준결승에서 [[셀타 비고]]에 패해 탈락했다.] 리그컵도 준결승까지 갔지만 레스터 시티에 패했다. 2000/01 시즌은 리그에서 8위를 기록했지만 이번에는 인터토토컵에서 우승하여 UEFA컵에 진출했다.[* 하지만 2001/02 시즌 UEFA컵 1라운드에서 크로아티아의 NK 바르텍스에게 광탈당했다.] 2001/02 시즌은 초반에는 선두에 올랐지만 11경기 1승으로 중위권으로 밀려났고, 덕 엘리스 구단주와 불화를 겪던 존 그레고리 감독은 2002년 1월 돌연 사임을 선언했다. [[그레이엄 테일러]]가 12년 만에 빌라 감독으로 컴백했고, 지난 시즌과 같은 순위인 8위로 마감했다. 여기까지는 7년 연속 10위 안에 들었으나 2002/03 시즌에는 오랜만에 승격한 지역라이벌 팀 [[버밍엄 시티]]에 두 번 모두 패배하는 굴욕을 겪으며 28년만에 순위에서 뒤처지며 강등 위기를 겪었고 최종전을 앞두고 마지막 홈경기에 가서야 13연패의 꼴찌 선덜랜드를 꺾고 간신히 16위로 잔류했다. 테일러 감독은 시즌 종료 후 사임했고, [[리즈 유나이티드]]를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으로 이끌었던 [[데이비드 오리어리]]가 빌라의 신임 감독이 되었다. 2003/04 시즌 개막 후 13경기에서 단 2승에 그치며 빌라는 강등권에 있었다. 하지만 12월을 기점으로 반등에 성공하며 리버풀, 뉴캐슬과 시즌 막판까지 챔피언스리그 막차인 4위 경쟁을 했다. 아쉽게 마지막 2경기에서 1무1패에 그치며 뉴캐슬에 골득실에서 밀려 6위가 되었고 그 시즌 리그컵은 11위 팀이었던 [[미들즈브러 FC]]가 우승하고, FA컵은 맨유가 우승한 가운데 2부리그 팀인 [[밀월 FC]]가 준우승해서 6위임에도 UEFA컵도 가지 못했다.[* 이 시기에 부담스러운 프리시즌 일정을 이유로 EPL 클럽들은 인터토토컵 출전을 기권했다.] 2004/05 시즌에는 10위를 하더니 2005/06 시즌에는 윌프리드 보우마, 케빈 필립스, 밀란 바로시를 데려오고도 16위에 그쳤다. 늘상 팬들의 의사조차 무시해가며 독불장군식으로 운영하던 엘리스 회장은 이들로부터 사퇴 압력을 수없이 받았고, 선수들도 엘리스의 학정으로 인해 언론에 불만을 표출했다. 결국 2006년 8월에 미국 NFL [[클리블랜드 브라운스]]의 구단주 랜디 러너[* 신용카드회사 MBNA 회장이던 앨 러너의 아들이다.]에게 약 6천2백6십만 파운드(약 1,130억원)로 구단을 매각했다. 그리고 오리어리 감독은 사퇴했고 [[마틴 오닐]]이 감독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